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무라고우치 마모루 대작 사건 (문단 편집) === 니가키의 기자회견 이후 동향 === 사무라고우치 측에서는 니가키의 기자회견 후 개인 변호인을 통해 '사무라고우치가 청각장애 2급 [[장애 수첩]][* 한국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에 해당한다.]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니가키와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독순술|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니가키가 '사무라고우치는 대화는 물론 음악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추가 반박은 없다. 히로시마에 살던 사무라고우치의 장모는 니가키의 기자회견 하루 뒤인 7일에 닛칸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16년 동안 딸과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지만, 지인에게 사무라고우치가 청각장애로 고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또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해 니가키가 주장한 가짜 청각장애인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장모의 말에 따르면 사무라고우치는 결혼 초기에 아내가 뼈빠지게 일하며 생활비를 버는 와중에도 취업 의지가 없어 결혼 후 7년 동안 고작 20만 엔을 벌었을 뿐이고 그나마도 유흥비로 탕진하는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학창시절 아내를 처음 본 뒤 어찌어찌해서 아내를 다시 만날 때 자신을 '(아내의) 남동생의 친구'라고 소개했으나 나중에 장모가 자신의 아들(아내의 남동생)에게 사무라고우치에 대해 물어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출근 때 자신의 실수로 [[청바지]]를 찢어먹자 회사 측의 실수로 옷을 버렸으니 배상하라고 하는 등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인물이었다고 하며 사무라고우치의 집에는 피아노도 없어 곡을 쓰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곡을 써주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 또 사무라고우치의 최대 히트작이었던 '교향곡 1번'의 작업 노트도 '필체를 확인해 보니 사무라고우치가 아니라 내 딸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딸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음악 지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니가키가 쓴 곡에 사무라고우치가 자신의 음악적 주장을 더하는 과정을 같이 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모는 마지막으로 딸에게 동반자살까지 종용하는 남편(사무라고우치)과 [[이혼]]하고 히로시마의 친정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니가키의 폭로에 감사하고 있으며 직접 만나고 싶다고도 밝혔다. [[후지 테레비]]의 생활정보 쇼프로그램인 '토쿠다네!(とくダネ!)'의 2월 7일 방영분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익명을 요구한 사무라고우치의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이 남긴 증언을 소개했는데 어릴 적부터 작곡가를 꿈꿨다는 공식 프로필과 달리 [[배우]]가 되고 싶어해 [[가출]] 소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액션 배우와 [[스턴트맨]]을 육성하는 재팬 액션 클럽과 악역 배우 전문 소속사인 악역상회에 잠깐 몸담기도 했다고 하는데 해당 기획사들에 사무라고우치의 가입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정식 회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쿄에 가서 보컬리스트로 입신하려 했다는 프로필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다만 이것이 순탄치 않았던 데 대해서는 오랫동안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몇 가지 증언이 나왔다. 사무라고우치는 1988년 초에 대중음악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오쿠라 몬도(大倉百人)에게 자신이 부른 노래의 녹음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보내 오디션을 요청했다고 한다. 오쿠라는 사무라고우치의 목소리가 좋았다고 평하고 자신의 사무소로 영입한 뒤 음반사 아홉 군데의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 테스트 겸 소규모 라이브 공연을 가졌다. 오쿠라는 이 공연 뒤 사무라고우치를 '제2의 야자와 에이키치(矢沢永吉)'[*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히로시마 출신의 록 보컬리스트로 1977년에 도쿄의 [[무도관]]에서 단독 공연을 가진 첫 일본 록 싱어로 유명하다. 서브컬처 관련 악곡으로는 [[용과 같이 3]]의 주제가로 사용된 'Loser(용과 같이 3를 위해서 만든 곡이 아니라 야자와 에이키치의 곡을 [[세가]]에서 허가받고 사용한 것)', [[뱀파이어 헌터]] [[OVA]]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THE TROUBLE MAN' 등이 있다.]라고 언론에 홍보하면서 두세 군데의 음반사에 사무라고우치와 계약할 것을 제의했는데 5월 말에 산케이 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목표로 삼는 사람은 없다. 일본의 록이 가지지 못했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의 ~~[[자뻑]]~~포부를 밝히는 등 꽤 기세등등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라고우치의 동생이 사고사하고 오쿠라도 사무라고우치가 자주 거짓말을 하는 등 불성실한 자세를 보이자 여름 무렵에 소속사에서 방출해 버렸다고 한다. 이후에도 나온 관련 증언이나 기사 역시 사무라고우치 측에 불리한 것들이 압도적이다. 주간지 'AERA'는 2013년 6월에 사무라고우치와 인터뷰를 했지만 기사화하지 않고 보류했음을 밝혔는데 기자가 사무라고우치의 자택을 방문해 인터뷰를 마친 직후 나오는 길에 사무라고우치를 만나러 온 다른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자 바로 '나갑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고 청각장애에 대한 의혹이 생겨 편집부와 논의한 끝에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음악 종사자들도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 기용이나 청각장애 의혹에 대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는데 음악평론가 스즈키 아쓰후미(鈴木淳史)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무라고우치 명의로 발표된 작품들이 사실은 니가키 다카시의 작품임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고 동료 평론가 교 미쓰토시(許光俊)도 2년 전쯤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